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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선언문

인간의 역사는 인문학의 역사이다. 인간은 의미의 세계 안에서 태어나, 의미 있는 삶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 삶의 결로서 ‘인문’이 지니는 참뜻이다. 의미를 생각하고 만들어내고 해석하고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켜 왔다. 과거, 현재, 미래는 인간의 이야기 안에서만 유의미한 실재가 된다. 인문학은 인간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서, 과학조차 이 이야기의 일부이다. 의미를 떠나 인간 세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구적 합리성과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세계 안에서, 인문학은 점차 본연의 역할을 상실해가고 있다. 좁은 분과 학문의 틀 안에 갇힌 인문학은, 그 근본정신은 망각된 채, 기술적(技術的) 지식의 형태로 변형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표준화된 기술적 지식으로서의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인문학 자체를 위한 것이다. 인문정신을 상실한
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 뿐 아니라, 인간의 위기를 초래하고 인간 역사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의미가 사라진 세계 안에서 과학기술의 성공과 경제발전은 방향을 상실한 채 맹목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의미를 상실한 삶보다 더 비인간적인 삶은 없다.


이제 우리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그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힘든 여정에 나서고자 한다. 좁게 울타리 쳐진 분과 학문의 우리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소통하고, 인간 삶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의미들을 말하고자 한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안에서 인간 삶의 의미가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지, 다양한 인간 문화들이 어떻게 상호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인간 정신의 발현으로 구축된 삶의 미래가 궁극적으로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현대 한국 사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발달한 기능주의적 사고에 깊이 물들어 있다. 우리가 가진 인문학의 풍부한 문화적 기반이 오늘의 한국을 가능하게 했지만, 불행히도 인문적 기반은 기술적 사고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자신에 관해 묻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없는 문화는 스스로의 동력을 가질 수가 없다. 한국문화, 나아가 한국사회가 한 차원 높아지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기반이 강화되어야 한다. 창조는 스스로 고뇌하고 꿈꾸는 자의 몫이다. 남이 가진 것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고뇌를 모방할 수는 없다. 한국 인문학의 중흥은 한국사회의 중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에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한국 사회는 인문정신의 회복에 힘써야 한다.
2. 한국 사회의 인문적 기반과 인문학의 발전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3.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한국의 풍부한 인문 전통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4. 한국의 인문학은 세계의 다양한 인문전통과 소통하고 타학문 분야와 소통함으로써 보편적 가치를 창조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2년 10월 26일
한국인문학총연합회